이정택 한의사 | |
전립선염 환자들을 장기간 치료하다 보면, 특정 직업군이 전립선의 문제에 취약하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 경찰관, 소방관, 고시생, 프로그래머, 직업운전사(택시, 버스, 트럭 등) 등이 대표적이며, 빈도는 적지만 경마 선수나 경륜 선수들을 간간이 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심신이 피로한 상태에서 오래 앉아있는 일이 잦은 업무 환경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비록 호두알만한 크기의 작은 장기지만, 전립선은 남자 신체의 가장 아래쪽 무게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전립선 주위에는 여유 공간이 하나도 없으며, 상대적으로 큼지막한 방광, 대장, 치골, 음경해면체와 고환 사이에 파묻혀있는 위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압박을 받게 되면 그 압력을 피할만한 공간이 별로 없다. 또한 앉은 자세에서 바닥과 전립선 사이(회음부)에 있는 건 약간의 근육조직과 음경해면체 정도로서, 장기간 중력을 받아내야 하는 위치에 비해 압력을 분산시켜줄 여유가 턱없이 부족한 구조이다. 오랫동안 앉아있을 경우 전립선에 무리가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체력과 근력이 충분할 때에는 장시간 앉아있다 해도 주위 조직이 어느 정도 지탱을 해주기 때문에 당장 전립선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지만, 문제는 피로가 쌓여 몸이 축 처지는 상태에서 오랫동안 앉아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 전립선을 중력으로부터 보호해줄 완충장치 역할이 사라지며, 앉아있는 자세 자체가 전립선에 무리를 준다. 전립선 조직 자체가 압박을 받기도 하지만, 전립선에 들어오는 혈관들도 영향을 받아 혈액순환에 지장이 생긴다.
이 경우 영양분과 산소를 적절하게 공급받지 못한 조직에 손상이 발생하며, 규모가 커질 경우 이른바 허혈성 염증이 생긴다. 조직세포가 제대로 혈액공급을 받지 못하여 염증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만성화되는 경우 비세균성 전립선염으로 이어지는데, 성병 등의 외부 감염 없이도 자체적으로 완고한 만성 염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간혹 대장균이나 포도상구균 등 몸 안에 원래 있던 상재균이 손상된 부위에서 증식되기도 하며, 전립선에 물리적인 압박이 가해지는 환경이 지속되면 재발과 호전이 반복되기도 해 환자에게 상당한 고통을 가하게 된다.
늦은 시각까지 계속 앉아있으면서 심신의 피로와 싸워야 하는 직업이라면, 전립선의 허혈성 염증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 체중을 지탱하는 근육의 힘이 약화되는 동시에 복부비만으로 하중이 늘어난다면 전립선은 이런 환경에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립선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부분적이나마 환경에 변화를 가해야 한다. 계속 앉아서 일하는 것 자체는 바꿀 수 없더라도, 자주 일어나서 전립선에 휴식을 주는 것이 좋다. 보통 1시간에 1회는 반드시 일어나 3~5분정도 걷는 일이 필요하다. 그냥 일어서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계단이나 복도를 천천히 걸어줌으로써 골반강의 혈액순환을 촉진할 수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줄넘기 같은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전립선 주위로 골반강의 정맥 울혈 및 림프관 부종이 이미 한 번 자리를 잡으면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습관 교정과 약간의 운동만으로는 이미 굳어진 상태에 변화를 주기 어렵기 때문에, 일정 기간의 집중적인 치료를 통해 자체 회복이 가능한 단계까지 몸 상태를 끌어올려줄 필요가 있다. 어차피 외부 감염으로 인한 염증이 아니기 때문에 항생제 위주의 치료는 결과가 미흡한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울혈을 해소하고 순환을 강화하는 한의학적 치료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비록 드러나는 증상은 뚜렷하지 않다 해도, 야근으로 의자에 걸터앉아 고생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전립선염의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경각심을 가지고 환경에 변화를 줘야 할 때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의사 이정택